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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기본] 서울에 나타난 산양, 누구냐 넌? 등록일 2018.09.16 07:31
글쓴이 앞선넷 조회 261

(사진) 살아있는 화석 산양/ 국립공원관리공단


전국에 700~900여 마리밖에 없다. 보통 해발 1000m 이상의 높고 깊은 산속 절벽에 서식한다. 멸종 위기 야생동물 1급이자, 천연기념물 217호. 바로 산양이다. 2018년 7월, 산양이 서울 중랑구 용마산에서 발견돼 화제가 됐다. 뒤이어 용마산과 약 30km 떨어진 포천 천보산에서도 산양이 발견됐다.

산양은 가파른 산악지역에 살기 때문에 사람의 눈에 띄는 경우가 드물다. 그래서 시민들에 의해 발견된 용마산과 포천 산양의 사례는 매우 뜻밖이다. 어느 날 갑자기 인간의 삶 속에 불쑥 나타난 산양. 이번 산양의 등장으로 환경부와 유관기관에서는 서울 용마산 일대를 서식지로 보존하는 것에 대한 논의를 진행 중이다.

산양은 대체 어떤 동물이기에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보호를 받게 된 걸까? 흔히 산양을 ‘살아있는 화석’이라고 한다. 200만 년 동안 모습이 거의 변하지 않은 희귀한 동물이기 때문. 산양의 머리부터 몸통까지의 길이는 85∼130㎝, 높이는 50∼71㎝, 체중은 35∼40㎏ 정도다. 암수 모두 뿔이 있고 꼬리는 짧은 편. 산양은 발바닥의 가장자리가 고무처럼 탄력이 있어 바위에 잘 붙기 때문에 가파르고 위험한 바위산에서 살아남기 적합하다.

산양은 길고 갸름한 얼굴과 우뚝 솟은 두 개의 뿔 때문에 얼핏 보면 염소와도 비슷하게 생겼다. 하지만 염소와 달리 턱에 수염이 없고, 염소와는 유전적으로 멀다. 그렇다고 양처럼 털이 하얗고 복슬복슬한 것도 아니다. 산양의 털은 곧게 자라며, 짧고 어두운 회갈색을 띤다.


■ 양, 친근하지만 어쩐지 낯선 느낌의 동물
흔히 양은 털이 몸에 가득 난 초원의 면양(綿羊: sheep)을 떠올린다. 한자로 양(羊)은 요즘의 면양(綿羊)과 산양(山羊)을 포함하는 경우가 많다. 일찍이 다산 정약용도 <다산필담>에서 “산양, 즉 염소를 양이라고 잘못 부른 사례가 많다”라고 했다.

우리나라와 일본은 초원이 드물다. 게다가 계절풍 기후여서 여름에 비가 많이 내리기 때문에 면양을 대규모로 키우기 어렵다. 면양은 근대 이후 우리나라에 들어온 양의 한 종류다. 오늘날 양이라고 하면 곱슬거리고 부드러운 면양을, 산양은 염소를 가리킨다. 서양에선 면양(sheep)과 산양(goral)을 확실하게 구분해왔다.

염소(goat)는 산양을 가축화한 동물로 여겨진다. 그러므로 십이지(十二支)의 미(未)에 해당하는 동물은 면양이 아니라, 염소와 닮은 산양이었다고 할 수 있다. 때로는 양띠를 염소 띠라고 부르기도 했다. 양과 염소를 같은 동물로 여긴 증거는 윷놀이에도 있다. ‘도개걸윷모’는 각각 돼지·개·양·소·말이다. 양이 걸이 된 이유는 새끼 양과 염소를 다 ‘고(羔)’라고 썼는데 이것이 ‘걸’로 변했기 때문이다.

흑염소는 가축화된 염소 중에서 털이 흑색인 것을 통칭한다. 한방에서는 보신 혹은 약용으로 양의 효능을 언급하고 있다. 조선시대 27대 왕 중에 환갑을 넘긴 왕은 모두 6명. 그 중 한 명인 숙종은 검은 색깔 음식을 보양식으로 즐겼다. 오골계, 흑염소, 검은깨, 검은콩 등을 자주 먹었다. 중병을 앓던 숙종은 오골계를 먹은 뒤 건강을 회복했다고 한다. 칭기즈칸은 생전 양머리 요리를 즐겼다. 전통 레시피가 아직도 내려오고 있다.

■ 양의 뿔을 닮은 양각산, 양의 내장과 같은 내장산
1960년대까지만 해도 산양은 우리나라의 높은 산악지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야생동물이었다. 그러나 무분별한 포획과 생태계 파괴로 한때 개체 수가 100마리 이하로 크게 줄기도 했다. 산양은 1968년에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보호받고 있다.

2007년부터 월악산에 산양 10마리를 놓아기르면서 산양 복원 사업을 추진했다. 이후 끊임없는 복원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여전히 산림 개간과 도로 개통 등으로 생존을 위협받고 있다. 산양이 높고 가파른 절벽의 바위틈에 사는 이유는 맹수로부터 자신의 몸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폭설, 한파 등 이상 기온 현상도 산양의 생존을 위태롭게 하는 요인이다.

산양은 설악산, 태백산, 소백산, 오대산, 월악산 등 백두산에서 지리산까지 이어지는 한반도의 가장 크고 긴 산줄기인 백두대간에 주로 서식한다. 산양의 보금자리 복원은 백두대간 생태계를 회복한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양은 불교와도 관련이 많다. 불교의 발상지인 인도·네팔 지역에는 양이 흔한 가축이어서 불교 설화나 종교화에 종종 등장한다. 전남 장성 백양사는 백제 무왕 때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고찰이다. 현재 명칭인 백양사는 조선시대 흰 양과 관련된 유래를 갖고 있다.

조선 선조 때 한 고승이 불경을 읽으며 기도하는데, 양 한 마리가 경 읽는 소리를 듣다 돌아가곤 했다. 몇 달 뒤 스님의 꿈에 흰 양이 나타나 ‘독경소리에 깨달음을 얻어 사람의 몸으로 환생한다’며 절하고 물러났다. 그때부터 원래 백암사였던 절 이름을 백양사로 바꿔 불렀다고 한다. 인근 내장산은 구불구불 이어진 계곡과 산세로 마치 꼬불꼬불한 양의 내장 속에 숨어들어 간 것 같다고 해 지명이 유래됐다.

마을에서 양을 많이 길렀다고 해 지명이 붙여진 곳은 광양시의 ‘백양동 마을’과 완도군의 ‘양도’ 등이 있다. 대체로 남부 지방과 섬에 양 관련 지명이 많다. 예부터 섬처럼 고립된 지역에 양을 방목해 키운 것과 관련이 있다.

■ 폭력의 악순환 멈추는 아름답고(美) 착한(善) 동물, ‘양(羊)’
양은 온순한 성질로 인해 예로부터 평화와 순종의 상징으로 여겼다. 또한 무릎을 꿇고 젖을 먹는 모습에서 옛사람들은 ‘은혜를 아는 동물’로 인식되기도 했다. 양이 희생의 상징인 것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마찬가지다.

유교의 영향을 받고 한자를 사용하는 동아시아 문화권에서 양은 제사 지낼 때 제물로 올리는 신성한 동물로 여겨졌다. 살이 쪄서 큰(大) 양(羊)은 천지신명이나 종묘에 모신 선조 왕, 유교의 성인들에게 제물로 바치기에 아름다웠다. 큰(大)와 양(羊)이 결합해 아름다울 미(美) 자가 만들어진 원리이다.

상형문자인 한자에는 희(犧), 善(선: 착함), 義(의: 올바름), 祥(상: 상서로움)처럼 羊(양)이 들어가서 좋은 뜻을 지닌 것이 많다. 바다 양(洋) 자는 큰 바다에서 돌고래 떼가 유영하는 모습이 양 떼와 같다는 모습에서 나왔다.

무엇보다 양이 들어간 가장 아름다운 글자는 바로 모태에서 생명의 탄생을 보호하는 양수(羊水)가 아닐까. 아이의 출산을 앞두면 양수가 나온다. 이 양수를 싸고 있는 것이 양막(羊膜)인데 그리스어로 ‘아무니온’이라 한다. 이 말은 어린 양을 뜻하는 고대 그리스어 ‘아무노스’에서 유래한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양을 신에게 바칠 때 부드러운 가죽 부대에 넣었다. 태아를 뱃속에서 싸고 있는 막이 이와 같다 해서 양막이라 하고, 그 속의 액체를 양수라 했다. 생명의 시작이 양과 뗄 수 없다고 고대인들이 생각했던 것이다.

‘희생양’이란 말도 종교 의식에 바치는 제물로 양을 선호했던 데서 비롯되었다. 희생양, 또는 속죄양(scapegoat)이라는 말은 인간의 원죄를 염소에게 전가하고, 그 염소를 황야로 내쫓아 버리는 고대 이스라엘 관습으로부터 나왔다. 이와 유사한 의식은 원시 때부터 동서양 곳곳에서 발견된다. 기원과 재난을 동물로 전가한 다음, 그 동물을 죽여 안정을 얻었다.

즉 공동체의 제사, 전쟁, 원정 및 왕의 취임식과 같은 큰 행사에는 의례 동물의 희생이 있었다. 양이 말, 소, 돼지 등과 함께 제물이 되었다. 이런 행사가 주기적으로 진행되면서 종교적 제의가 되었다고 보는 학자들도 있다.

■ 마녀사냥, 유대인 학살, 간토 대지진 조선인 학살 사건의 희생양
희생양이 사람인 경우도 있었다. 대개 사회적 약자였다. 아즈텍 문명에서 주로 행해졌던 인간의 희생과는 다른 개념이다. 실업, 경제 불황, 범죄 등의 사회문제에 따른 대중의 불만이 고조되면 사회의 긴장감이 극에 다다른다. 큰 격변이 일어날 수도 있다. 대중 지배를 위해 그 폭력적 에너지가 어딘가에서 소진되어야만 한다. 때로는 누군가의 부패나 추문 등을 악용하기도 했다. 무언가를 희생함으로써 진짜 잘못을 저지른 대상을 잊히게 만든다.

만약 이순신 장군이 삼도수군통제사직을 잃고 백의종군하기 전에 처형당했다면, 훗날 역사의 기록은 어떠했을까? 통제사직에 연연하면서 전투를 회피하고 일본과 내통한 인물로 그려졌을지도 모른다.


아주 고약하게는, 위기에 몰린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애꿎은 전쟁을 일으켜 폭력적 에너지를 외부에 소진하게끔 한 적도 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그랬고, 유대인을 학살한 히틀러도 마찬가지였다.

‘양두구육(羊頭狗肉)’은 ‘양(羊) 머리를 걸어놓고 개고기를 판다’는 뜻이다. 겉으로는 번듯하고 그럴듯하지만 속은 변변치 않을 때, 다시 말하면 겉과 속이 서로 다를 때 쓰는 말이다.

현재 우리 사회에는 ‘양의 탈을 쓴 이리’와 같은 이단들이 넘쳐난다. 지금 우리 주변에 누군가의 희생이 필요하다면, 그래서 모든 갈등과 긴장이 해소될 수 있다면 누가 나서야 할까? 알렉산더 대왕이 남긴 말이라던가. “한 마리 사자가 이끄는 양의 군대가, 한 마리 양이 이끄는 사자의 군대보다 두렵다”(nbnnews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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